"국민의힘의 '역사 왜곡' 공세는 창작의 자유를 법정과 국정감사장으로 끌고 가려 한다.
그러나 기록이 끝난 자리에서 상상이 시작되는 것은 예술의 오래된 권리다"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영부인 육영수가 쓰러졌고, 재일교포 문세광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공식 결론은 '북한 지령에 의한 저격'이었다. 반세기가 지나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이 그 결론에 물음표를 붙였다.
9월 23일 개봉한 이 영화는 추석 연휴 동안 156만 관객을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매출 점유율은 40.6%로 2위의 두 배 가까이 됐다. 영화는 사건을 쫓는 경찰과 기자, 그리고 진실을 덮으려는 권력을 그린다. 실제 사건에 허구의 인물과 설정을 더한 극영화다. 여기에 중앙정보부와 박정희 정권이 관여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서사가 깔려 있다.
국민의힘은 크게 반발했다. 유영하 의원은 "명백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며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썼다. 구자근·강명구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이를 "악질적 범죄행위"라고 불렀다. 임이자 정책위의장은 특별법 위반 가능성을 꺼냈고, 김미애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12세 관람가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장동혁 대표는 "보지 않습니다. 예매하지 않습니다"라는 포스터를 공유했다. 당은 감독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했고,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9월 29일 허 감독과 제작진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사실'을 다투는 법정, '가능성'을 묻는 스크린
국민의힘 논리의 핵심은 영화가 '허위사실'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극영화는 사실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럴듯한 가능성을 보여 줄 뿐이다. 제작진도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내리거나 기존 사실을 부정·왜곡하기 위해 제작한 영화가 아니다"라며 "특정 인물을 배후로 지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허 감독의 설명은 더 분명하다. 논쟁적 사건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감독의 몫이 아니고, 은폐가 있었고 풀리지 않은 대목이 남았다는 점을 보여 주려 했다는 것이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한 편의 영화를 '범죄'로 규정하고 감독을 국정감사장에 세우겠다는 발상은 더 위험하다. 입법부가 창작물의 해석을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권력이 예술가를 불러 세우는 장면은 박정희 시대에 익숙했던 풍경이다.
의문은 영화가 만든 것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2002년 김정일이 방북한 박근혜에게 사과했다는 사실을 들어 북한 배후설은 이미 끝난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둘러싼 의문은 영화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저격범의 총이 아닌 다른 총탄이 영부인을 맞혔을 가능성, 경호가 허술했던 경위, 수사가 유난히 빨리 마무리된 과정 등은 수십 년 동안 언론과 연구자들이 제기해 온 물음이다. 중앙정보부가 수사와 발표를 사실상 독점하던 시대의 공식 결론을 반세기 뒤에도 신성불가침으로 받들라는 요구는 역사를 지키는 일이 아니다. 역사를 박제하는 일이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자. 1991년 올리버 스톤의 영화 'JFK'는 케네디 암살의 '단독범 결론'에 정면으로 의문을 던졌다. 당시에도 역사 왜곡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일으킨 여론은 이듬해 미국 의회가 '케네디 암살 기록 수집법'을 만들어 방대한 비밀문서를 공개하는 계기가 됐다. 영화가 모든 답을 맞힌 것은 아니었다. 다만 국가에 기록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여론을 만들었다. 상상력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방식은 대개 이렇다. 정답을 내놓는 대신 질문을 되살린다.
설령 박정희가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분명히 해 두자. 박정희가 육영수 피격을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를 옹호해야 하는 이유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는 역사 속 인물을 조카를 죽인 괴물로 그렸다. 그 묘사를 두고 역사학계는 지금도 다툰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불태우자는 사람은 없다. 역사극의 가치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옮기는 데 있지 않다. 권력의 속성, 은폐의 구조, 공포가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을 드러내는 데 있다.
유신 체제는 긴급조치로 말을 막고 중앙정보부로 진실을 관리했다. 그런 권력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대중의 의심은 영화가 지어낸 것이 아니다. 그 체제가 스스로 쌓아 올린 불신이다. 영화는 그 불신에 서사를 입혔을 뿐이다. 따라서 '암살자(들)'이 겨눈 과녁은 한 사람의 명예가 아니다. 진실을 독점했던 국가권력과 그것이 남긴 긴 침묵이다.
관객은 생각보다 현명하다
"청소년이 사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은 관객을 얕보는 말이다. '그때 그사람들'부터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에 이르기까지 한국 관객은 현대사를 다룬 극영화를 보며 스스로 묻고, 찾아보고, 토론해 왔다. 영화 한 편이 역사를 바꿔 놓을 만큼 시민이 어리석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후견주의의 사고다. 2005년 '그때 그사람들'이 유족의 가처분 신청으로 일부 장면을 지운 채 개봉해야 했던 일은 지금도 한국 표현의 자유 역사에 부끄러운 대목으로 남아 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장동혁 대표는 표현의 자유 기준이 불공평하다고 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그가 할 일은 불매 포스터를 돌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불편한 작품에도 같은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내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지키려고 있는 권리가 아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말해질 권리를 지키려고 있다.
역사 해석의 최종 심판자는 국정감사장도 경찰서도 아니다. 기록을 파헤치는 연구자와 그 결과를 따지는 시민의 공론장이다. 영화는 그 공론장에 던져진 하나의 질문이다. 질문이 불편하다면 할 일은 하나다. 국가기록원과 국가정보원에 잠든 1974년의 문서를 남김없이 공개하라고 요구하면 된다. 그것이 고인의 명예를 지키는 가장 떳떳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