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부터 최저임금은 전쟁 중이다. 2018년 최저임금 16.4%, 시급 7530원 실시로 여기저기 최저임금 얘기다.
이 전쟁은 다발성 증상처럼 여러 곳에서 불붙고 있다. 늘 그렇듯 조중동 등 수구언론이 최저임금 ‘사건’ 증폭 시그널을 타전하고 있다. 사설 등 제목만 살펴보더라도 중앙일보는 ‘최저임금 인상의 역풍 … ‘1만원 공약’부터 내려놓아야’, 부제로 ‘공약 지키려다 실업난 부채질’ ‘생활 물가 전방위로 들썩거려’로 제시하면서 ‘인상 속도 조절해야 혼란 줄여’라고 강변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최저임금 오른 만큼 가격인상 부담 감당할 수 있나’로 실패를 예감케 하는 제목을 붙였다. 조선일보는 ‘연초부터 몰아치고 있는 최저임금의 역설’이나 ‘기자의 시각코너’란의 ‘맞벌이夫婦의 최저임금 충격’, 심지어 ‘12월 求人 수 17% 추락, 최저임금 후폭풍이다’라는 제목을 뽑아 구직 사이트의 구인 규모가 줄었음을 소개했다. 실제로 고용이 감소한 듯한 착각을 주는 조선일보스런 제목 뽑기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고용을 줄이는 것이 진실일까? 현실에서 벌어지는 최저임금을 둘러싼 싸움의 양태를 보면, 우선 최저임금의 압박 때문에 영세 자영업자 층에서 고용을 줄이겠다는 것이나 홍익대등 대학의 청소 노동자와 아파트 경비원등을 정리해고 하는 방식이 나타났다.
홍익대가 이달 1일 기존보다 줄어든 인원으로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어 청소노동자 4명이 해고했다. 여의도 동아빌딩은 10일 5명을 감축했고, 세종로 대우빌딩에서는 경비노동자 3명이 쫓겨났다. 연세대·고려대·덕성여대·인덕대와 프레스센터는 정년퇴직자 자리를 충원하지 않거나 초단시간 노동자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구조조정을 했다.
다들 대학이나 기업의 경영이 어렵다는 것인데, 정말 경영에 주름살이 가는 것일까? 10명 일하던 작업을 7명으로 줄이는 발상은 1997년 이후 노동유연화라는 미명하에 진행돼 온 노동착취에 그 기원이 있다. 비정규직이니 쉽게 자르거나 노동강도를 1.5배 늘릴 수 있다는 인식이다. 참고로 2016년 기준 홍익대는 7429억원, 연세대는 5307억원, 고려대 3586억원의 적립금을 쌓아 두고 있다.
또한 상여금등을 고정·일률적 지급 금품에 포함시켜 최저임금법을 피해나가자는 꼼수도 등장했다. 모사업장은 반기마다 150%씩 연간 300% 주던 상여금을 산정·지급주기를 변경해 매월 25%씩 지급하는 것으로 바꿨다. 또 다른 프랜차이즈점은 아르바이트생 휴게시간을 1시간 늘려 소정근로시간을 줄였다. 그러면서 휴게시간에도 업무지시를 계속했다고 한다.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한 꼼수다.
▲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홍익대분회 회원들과 홍익대학교 학생들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문헌관에서 청소노동자 해고 통지 철회 촉구 집회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돈을 아끼려 미화 노동자 인원을 감축한 홍익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홍익대분회는 이날 홍익대학교의 청소노동자 인원감축 방안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민중의소리 김슬찬 인턴기자 © 성남피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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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금 꼼수’는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이므로 불법
‘직장갑질119’는 1월 2일부터 6일까지 오픈카톡·이메일 등을 통해 54명으로부터 56건의 최저임금 갑질 신고를 접수했다.한 달 이상 간격을 두고 주던 상여금을 매달 지급함으로써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상여금 갑질’이 30건(53.6%)으로 절반을 넘었다. ‘수당 갑질’은 12건(21.4%)으로 식대·교통비·근무평가수당 등을 없애 기본급에 포함시키는 꼼수다. 휴게시간을 서류상으로 늘려 소정근로시간을 줄이는 ‘휴게시간 갑질’은 8건(14.3%), 기타 6건(10.7%)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참고로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은 4시간 근무에 30분 이상, 8시간 근무에 1시간 이상 주게 돼 있다. 심지어 일부 기업들은 노무컨설팅 회사를 통해 기존 통상임금에 속한 상여금, 식대 등을 기본급으로 편입하는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법망을 피하라는 교육을 받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도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법 6조(최저임금의 효력)에는 최저임금을 이유로 종전의 임금수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고, 이는 ‘근로조건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 이러한 변경을 위해서는 과반수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 동의를 거쳐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한다.
영세 자영업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원을 재고용할 수 없는 어려움에 대해언론을 통해 많이 보도됐다. 그러면서 수구언론은 자영업자와 최저임금 인상을 대립항으로 놓고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실상 자영업자는 저임금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영세 사용자의 평균수익은 노동자 평균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영세 자영업자의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어려움은 한국경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입체 3D’라고 할 수 있다. 과도한 임대료, 프랜즈차이점 본사의 갑질과 금융비용 상승이라는 삼각파도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임대료 인상 5% 상한, 계약갱신요구 10년으로 늘려야
수도권 평균 임대료는 점포면적 50㎡ 상가(1층)의 경우 2010년 946만원에서 2012년 1420만원으로 474만원 상승했다. 불과 2년 만에 상승폭이 이렇다.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영업비용은 최근 5년 간 연 평균 7.2%나 증가해 같은 기간 중 연평균 매출액 5.8%를 상회했다. 이는 인건비도 인건비지만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 증가, 임대료 상승, 높은 부채수준 등의 이유도 크다. 실제로 대기업에게는 1% 안팎인 신용카드 수수료가 자영업자에겐 최고 2.5%에 이른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경우 초기 투자비용부터 상당하다. 2013년 한국경제의 ‘프랜차이즈 창업 때 본사에 얼마나 내나’ 기사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의 초기 투자 비용은 편의점 기준으로 최대 7220만원, 제과·제빵점업 5200만원, 외식업은 2억783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본사로부터 홍보비용 등을 넘겨받고 불필요한 부분까지 본사물품 사용을 강요받는 등 갑질 문제도 심각하다.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최저임금만의 탓인가? (미디어오늘, 2018. 1. 7일자 )
결국, 영세 자영업의 경우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의 갑질이나 부동산 정책의 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 임대차 관련해서 국회에서 현재 9%까지 인상이 가능한 임대료를 5%로 제한하는 시행령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문제되어 온 계약갱신 요구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개정 법안을 시급히 통과 시켜야 한다. 이래야 영세자영업자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
다시 최저임금제도의 도입 취지로 돌아가 보자.
최저임금 제도를 적용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규직도 아니고 시간제, 임시직의 알바학생이거나 고연령 노동자, 가정에 있다가 아이들 교육비라도 보탬이 되자고 시장으로 나와 일자리를 얻은 여성들이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특성상 노동조합이나 근로기준법의 혜택도 받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누구보다도 노동조합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사람들은 노동조합의 바깥에 있으며 노동법은 너무 멀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며 취약계층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시장 실패’에는 정책 개입 불가피
이러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현재 90% 이상의 국가에서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가장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는 홍콩의 경우 2011년 5월부터 법정 최저임금을 도입했다. 독일의 경우 ‘아젠타 2010’이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행됐는데, 미니잡 등 고용 불안정이 심해지고 노조 조직율이 계속 하락하면서 노조에서 이를 보호해 줄 수가 없으니 2015년에 최저 임금제도를 도입했다.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노조단체협약을 적용받는 비율이 70%에 이르는 덴마크 같은 경우에만 최저임금제도가 없다. 한마디로 사회적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서 최저임금제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에서 일하는 이상헌씨는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반 시장적이란 주장은 게으르다.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이 시장으로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시장 실패’ 상황에서 정책 개입을 통해 시장을 정상화하려는 것이다. 이미 실패한 시장에 ‘비시장적인’ 정책개입을 한다고 해서 이를 반시장적이라고 하면 감정 돋친 말싸움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최저임금 활극 시나리오는 GDP 성장 신화와 무한이윤추구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여 온 정부당국과 대기업 자본가들 그리고 해외 투기 금융이 그 원작자다. 외환 위기 이후 20여년 간, 비정규직 양산되었으며 그 결과는 사회 양극화다. 기업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쫓았고, 노동자 인구 절반은 파견, 도급, 임시직, 파트타임, 기간제, 나아가 특수고용직이란 이름의 비정규직이 됐다, 새로 노동의 대열에 합류하는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알바노동자나 반실업자 상태로 전전하고 있다.
이것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이어져 온 노동배제 정책의 결과물이 만들어낸 2018년의 살풍경이다. 명백한 ‘시장의 실패’다. 이를 조금이라도 정상화하기 위한 최저시급 7,530원이 부담스럽고 당혹한 정책 개입인가? 이 ‘시장 실패’의 선봉이었던 정치집단과 재벌기업들, 수구언론은 어떤 정책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최저임금이 급작스레 16.4% 올랐다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벌써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었어야 옳다. 수구언론은 속도 조절론이나 최저임금 망국론을 들고 나오기 전에 기득권 세력에 대한 몰염치와 갑질, 그리고 반노동 정서를 질타해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은 그 동안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유포시켜 온 반노동 정서를 노동존중의 순방향으로 바꾸는 터닝 포인트다. ‘함께 살자 대한민국’을 향한 소중한 첫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