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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태산 대종사가 윤석열 시대를 살았다면....

김영욱 | 기사입력 2025/03/23 [13:50]
특집/기획
[칼럼] 소태산 대종사가 윤석열 시대를 살았다면....
기사입력: 2025/03/23 [13:50] ⓒ 성남피플
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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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태산 평전 책 표지 -알라딘 문고  © 성남피플



[발행인 칼럼소태산 대종사가 윤석열 시대를 살았다면....

 

오랜만에 책을 하루낮 하루밤에 완독했다.

김형수 시인 겸 소설가가 쓴 소태산 평전’ - 솥에서 난 성자 (문학동네 2016)이다.

 

작가는 구한말부터 해방 직전까지 소태산의 일대기를 추적한다.

영광에서부터 익산에 이르는 길이다.

소태산은 호다. 자는 처화處化 이름은 박중빈(朴重彬, 1891~1943) 1891년 나서 1943년에 서거하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원불교의 창시자다. 하지만 여느 불교의 고승처럼 머리를 삭발하고 절밥을 먹고 여기로부터 피생된 분파가 아니다. 소태산은 자신이 최제우의 현신임을 자각했다고 한다.

 

이 책의 특징은 시대와 민중삶에 대한 천착이다. 작가는 이를 담담히 세밀화로 그려나간다. 어는 사상이나 종교가 신의 게시에 의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그 시대를 숙명처럼 대하고 그로부터 해원解冤하고 민중창생이라는 기치를 든다.

 

구한말 동학농민혁명이 그러했다. 가렴주구의 학정에 시달리고 지금의 콜레라라고 불리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농민은 마치 현실이 지옥 그 자체였다.

농민전쟁은 패배했고 그 참상을 이제서야 조금 느끼게 된다.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된 이후의 참상을 시인 신동엽은 시 '금강'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동에선

아궁이속 숨어있는

일곱 살짜리 계집앨 끌어내

아버지 있는 곳 대지 않는다고

기관총 갈긴

일병日兵

 

 

청산에선 미친개, 이진호 이겸제 등이 거느린

왕병王兵과 일군日軍 기관총 소대가

삼백오십 명의 농민 사살하여

보리밭에 버렸다.

 

그들은 다음날

옥천에 들어가

동학교도 정원준 서도필 등

아홉 명의 노인을

눈사태 속 끌어내

발가벗겨 세워놓고

사격,

 

이두황이 인솔한 왕병은, 왜군 기관총 소대의 지원을

어더 온양에서 농민 구십여 명을 창고에 몰아

넣고 불을 질렀다. 그리고 동네 부녀자를 강간한 뒤

기관총 난사,

 

 

마을을 하나하나 쓸면서 자그마치 농민 삼십만 명을 죽이고 간다. 피 학살자가 오십만 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책 소태산. 126p)

 

최제우의 인내천과 강증산의 태을주가 민심을 휘어 잡았다. 나는 동학교리와 증산교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의 큰 파랑속에서 민초들은 희망을 찾았고 최제우와 증산은 민중을 하늘로 받들며 후천개벽의 시대가 열릴 것을 설파했다.

지금이야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가 한국의 3대종교로 자리잡았지만, 토착신앙, 토작 사상으로서 동학, 증산 이를 잇는 소태산의 원불교가 있다고 본다.

 

저자가 설파하는 소태산 대종사의 행적과 사고방식중 가장 눈에 뜨는 것은 바로 그 어떤 추상이나 이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주와 소통하고 관계에서 존재하는 사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솔은 일만 나무의 남은 봄을

거두어 서 있고

 

개울물은 일천봉우리의 가랑비를

합하여 소리치며 흐른다

 

민중을 도탄에서 구할 후천개벽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민중의 의식개혁에서 찾고 이 의식 개혁을 먹고사는 문제 해결로부터 출발했다.

그래서 조선에서 거의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방언조합을 만들었다. 영광의 갯벌을 메꿔서 농토로 만드는 당시에는 모두들 허망한 고생이라는 한 일을 이뤄내 농민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희망을 심었다.그리고 절약을 통해 의식개혁의 전당을 만드는 기초를 닦었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후천개벽은 자아와 세계의 분열, 존재와 관계들의 충돌, 파산과 쟁투가 극심했던 시대에 모근 것을 통합하는 정신이 출현일 것이다. 소태산의 대응은 삶과 구도를 일체화 하는 것이었다.

주어진 여건하에서 상황을 도피하지 않고 줄기차게 구도하여 상생의 묘수를 찾아내는 지혜야 말로 진정 위대한 것이었다.“

 

소태산은 모든 존재가 은으로 맺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소소한 하늘이 위로 장막을 두르고 광막한 자리를 하였나니 이것이 참말로 군의 큰 집이다. 이 집이야 변천도 개조도 없는 천만년을 가더라고 그대로 있는 집이다. 사람이 다 이 집속에 살건만 보아도 보지 못하고 한 채의 초가 한 칸ㄴ의 방 그것만을 제것으로 인정하여 서오 울과 담을 쌓으며 다투고 싸우기를 마지 않는다

 

은은 베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음을 이해해야 아는 것이다. 세상이 은속에서의 반복 충돌을 선천시대의 자기 분열탓이다. 광물은 생물과 다르고 동물은 식물과 다르며 사람은 동물과 다르며 나는 남과 다르니, 분리하고 차별하고 억압하고 제거하는 세계를 그는 선천이라 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선천시대는 진행중에 있다. 하지만 이 후천개벽의 과정은 순턴치 않다. 정치 위정자들은 혹세무민하고 자신의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소태산 대종사라면 이러한 억압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을 것인가? 다만 싸우지 말라고 할 것인가? 그렇치 않다. 은의 관계를 허무는 선천의 악업은 끊어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판결기일이 늘어짐에 따라 걱정들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만약, 헌재가 윤석열 탄핵을 기각한다해도 이는 한 줌의 모리배가 풍랑으로 무너지는 난파선의 한 조작 널빤지를 잡고 허우적 대는 형국일 것이다. 주말마다 또 평일저녁 마다 민중은 광화문으로 달려나가는 수고로움을 더 할 테지만, 후천개벽시대를 여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구한말 동학농민전쟁이후 억압의 선천시대를 끝내고 해방이후 줄기차게 민주주의를 밀고간 한국민중은 윤석열 검찰집단, 나아가 분열 억압의 모리배를 반드시 넘어설 것이다.

 

 

광장이 후천개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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